공지 Prologue

스테이벗무브(2025)
2025-06-19
조회수 406



하버하우스웨스트에는 손님들이 적어두고 가신 방명록이 스무 권 정도가 있는데요.
햇살 따뜻한 거실에 앉아 손님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읽고 있다 보면
울다가, 웃다가, 위로해 주고 싶다가, 그 끝에는 이상한 용기를 얻어
'아, 잘해야지' 하는 부푼 가슴으로 자리를 일어나게 됩니다.
잠시 멈춰있었는데, 어떤 기분 좋은 감정들로 가득 차 다시 움직이게 하는
누군가 남겨놓고 간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싶어 '스테이로그'를 열었습니다.
잘 정리된 것도, 날 것 그대로도 좋았던 누군가의 흔적을 이곳에 옮겨 적습니다.

 




d1daecffc76c9.jpg




Prologue. 하버하우스웨스트, 타이니인 호스트의 글



돌이켜보면 참 어설픈 게 많았던 이십 대 초반,
살갗이 따갑도록 뜨거웠던 여름과 발끝까지 시리던 겨울의 제주를 하염없이 걸었던 적이 있습니다.
갓 성인이 되어 이전에는 해본 적 없던 새로운 생각들과 의문들로 가득 차 속이 시끄럽다가도
올레리본이 안내하는 바닷길을, 숲길을, 돌담길을, 밭길을 걷다 보면 '아, 그랬겠구나' 하며 저절로 이해되는 순간들이 찾아왔어요.

그렇게 올레길을 혼자서 꿋꿋하게 걷다가
동문시장 속 작은 국밥집에서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시켰던
이제 막 어른이 되려는 아이에게 국밥집 할머니는
"무슨 생각을 그리도 하고 싶었을꼬?" 하며 걱정 어린 마음을 보태주셨습니다.

삼십 대 중반이 되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함께 나눌 소중한 가정을 꾸리며 살면서도
무슨 생각을 그리도 하고 싶어 이곳에 혼자 왔냐는 그 질문은
가끔 온갖 생각에 잠기는 나를 위로해 줍니다.
그때 혼자 걸었던 제주 여행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,
지금의 나를 꽉 안아주는 것 같아요.


다시 입 밖으로 꺼내기도 부끄러웠던 날들,
처절하게 슬펐던 날들,
가슴이 저릴 만큼 외로웠던 밤들,
분노로 지새웠던 밤들,

그 모든 날들은
혼자일 때 비로소
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고, 이해하고, 품어줄 수 있더라고요.


그런 날들을 몇 번이고 잘 지나 보내고 나면
혼자인 채로 끝나는 게 아니라
결국엔 사랑을 잘 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 믿어요.
그리고 그때는 세상을 더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어요.

오늘, 혼자 여행하는 젊은 날의 여러분을
진심으로 응원할게요.
이 여행을 다 끝내고 나면 더 나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.